만세고개(양양 3.1만세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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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여노소 종파 신분의 구별 없이 저항하다

 

양양 3.1만세운동은 4월 4일부터 9일까지 1만 5000명(당시 양양인구 3만 6천명 추산) 넘게 시위에 참여하고, 전국시위 중 가장 치열했던 곳으로 13명의 사망자, 50여명의 부상자, 체포자는 부지기수였다.


4월 3일 태극기를 만들던 이석범을 비롯한 22명이 체포되었다.


4월4일 양양장날에 경찰서와 군청을 에워싸고 태극기를 만들다 체포된 감금자를 석방하고 일본으로 물러가라고 시위했다. 함홍기는 경찰서장에게 항의하려 경찰서에 들어가 화로를 던지려다가 일본경찰 두명에게 양팔이 잘린 후 목에 찔려 죽었다. 


4월5일 대포항 만세시위는 1000여명의 시위로 경찰을 굴복시키고 다음날 양양읍에 모이기로 하고 해산했다. 다음날 제지하는 군대를 밀어내고 읍내 경찰서로 몰려가자 경찰서장이 "일본은 물러 갈 테니 만세만 부르고 돌아가 달라"고 애원했다.

 

4월 7일 천도교를 중심으로 300여명이 양양읍내에 들어오자 일본경찰은 주도자 4명을 체포하고 군중을 해산 시켰다.

 

4월 9일 하광정리 면사무소에 모인 1000여명은 만세를 부르고 기사문리 주재소를 가던 중 일본경찰이 기사문리 언덕(만세고개)에서 총을 발포하여 사망자 9명, 부상자 20명이 발생했다.


 

반민특위 법정 - 민족 반역자 처벌하여 민족 정기 회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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