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비란 본래 임금이나 2품이상 고관을 지낸 사람에 한해 세울수 있었으나, 공신이나 저명한 유학자인 경우 왕명에 의해 세울 수 있다.


김제남은 조선중기 문신으로 딸이 선조의 계비에 뽑히므로서 영흥부원군으로 봉해졌다. 1616년에 이이첨 등에 의해 영창대군을 세자로 추대하려 했던을 받아 사약을 받았으며, 1623년 인조반정에 관작이 복구되어 왕명으로 사당이 세워졌다. 


김제남신도비의 받침돌은 거북머리가 비를 바라보듯 뒤를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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