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보현사 낭원대사탑" 보물 제191호  

 

"강릉 보현사 낭원대사탑비" 보물 제192호

 

"강릉 보현사 석조아미타삼존불상과 복장유물"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67호

 

"강릉 보현사 목조보살좌상과 복장유물"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73호

 

"강릉 보현사 소조보살좌상"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153호

 

 

보현사는 낭원대사탑 보물 제191호와 낭원대사탑비 보물 제192호가 있는 사찰로 역사가 깊고 주변이 조용하고 풍경이 아름다운  곳이다.

 

낭원대사탑비는 낭원대사의 출생에서부터 입적까지의 그의 행적이 실려 있는 탑으로 사찰 입구에 있으며 , 낭원대사탑은 낭원대사 사리탑으로 보현사뒤 산비탈 오솔길을 따라 올라가면 볼 수 있다.

 

 

 

보현사의 창건에는 두 가지 설이 전해지고 있다.

 

신라시대에 불교 4보살 가운데 한 분인 보현보살이 직접 창건하였다는 설이며, 신라때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돌로된 배를 타고 천축국로부터 강릉의 동남쪽에 위치한 남항진 해변에 당도하여 문수사를 세웠다고 하는데 이 문수사가 지금의 한송사지로 알려진 곳이다.
절이 완공되자 보현보살은 말하였다.
"한 절에 두 보살이 함께 있을 필요가 없으니, 나는 활을 쏘아 화살이 떨어지는 곳을 새 절터로 삼아 떠나겠다."
보현보살이 신력으로 활시위를 당기자 화살은 멀리 날아 현재의 보현사 위치에 떨어졌으므로 절을 창건하고 머물렀으니 이것이 보현사라는 것이다.

이에 비해 낭원대사의 창건설은 한 고승의 생애가 뒷받침하고 있어 일반적으로 이 설을 따른 경우가 많다.
그러나 사창 경내의 낭원대사오진탑비(보물제192호)를 참고하여 대사의 생애를 살펴보면 이 절의 창건자는 대사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낭원대사는 보현사를 크게 중창하고 참선도량을 이룩하여 이절을 사굴산문의 대표적인 선찰로 탈바꿈 시켰던 것이다.
낭원대사의 창이후 이 절의 역사는 자세히 전해지지 않고 있지만 대관령을 분기점으로 하여 내문수도량 월정사와 함께 외보현도량의 명성을 이어 수행승의 요람으로 이어 왔다.


입구에 있는 20여기의 부도가 절의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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